보스의 꽃




 서준의 세상은 늘 시끄러웠다. 술에 취해 매번 어머니를 폭행하던 버러지 같은 아버지와 맞으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살던 아픈 어머니는 병원비는 커녕 약 값조차 없었고 아버지가 진 도박 빚에 늘 도망다니고 시달리는 삶이었다. 서준은 아버지를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픈 몸으로 매일같이 폭행 당하는 어머니는 미련한 바보처럼 아버지를 사랑했다. 연애 시절 다정했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나날이 몸이 약해져만 가던 어머니는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아주 추운 겨울 날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자신이라도 약 값을 벌어보려 아둥바둥 일용직을 전전했던 어린 시절의 서준. 끝끝내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이성을 잃은 듯 소리를 질러대며 서럽게도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집에는 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불시로 들이닥치곤 했다. 집 마당을 쑥대밭으로 헤집으며 아버지의 행방을 묻고 위협하던 사내들은 끈질기게 찾아왔다.



"그런 사람 여기 안 산다고, 씨발!"



 순간 서준은 겁도 없이 성인 남성에게 달려들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남자의 얼굴에는 생채기가 났고 어이없다는 듯 웃던 남자들은 어린 서준을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며칠 반복하자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저 새끼 어린 애한테 맞았다며, 저들끼리 우스갯 소리로 시작했지만 이내 보스의 귀에까지 이야기가 들어갔다. 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함께.



 우람한 덩치의 보스는 며칠 뒤 본인이 직접 가서 봐야겠다고 얘기했다. 굉장히 드물게 있는 일이라 조직원들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냉기가 도는 작고 허름한 방 한켠. 두툼한 이불에 가만히 누워 숨을 가늘게 쉬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 그 옆을 지키며 안절부절 못하는 상처투성이의 안쓰러운 한 소년. 이내 시끄러운 쇳소리가 들리며 남자들이 들어왔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지고 낡아빠진 대문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 아주 쉽게 열려버렸다. 


 서준은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듯 방 안에서 나가지 않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보스는 담배 한 개피를 빼어 물곤 평상에 앉아있었고 조직원은 집안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와 서준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른들이 오셨는데 이 새끼는 싸가지가 없어, 하여튼."


"돈 없으니까 그만 찾아와. 우리가 진 빚 아니니까 귀찮게 굴지 말고 알아서 찾아, 씨발."


"미친놈. 나와, 씹새꺄."



 서준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끄는 조직원에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쉬며 눈물을 흘려댔다. 이미 힘이라곤 남아있지 않는 몸이지만 어떻게서든 손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쓰는 듯 했다. 남자의 팔을 거칠게 뿌리친 서준은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괜찮아. 울지 마."



 조직원을 밀치고 먼저 성큼성큼 마당으로 향하는 서준. 평상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서준은 직감했다. 맨날 찾아오던 것들이랑은 애초에 레벨 자체가 달라 보였다. 하지만 그것에 기죽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서준의 삶이었다.



"안녕."



 보스가 웃으며 서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서준의 눈에는 말하는 쓰레기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버지랑 연락 안 해요. 집에도 안 온지 한참 됐고. 그러니까 그만 찾아와요, 좆같으니까."


"당돌해서 좋네. 근데 우리 시스템이 그래. 네 아버지가 우리한테 진 빚이 몇 억인 줄 아냐? 그거 다 받을 때까진 우리도 우리 일 하는 거란 얘기야."


"나는... 나랑 엄마는 잘못 없잖아요. 우리는 그 돈 십원 한장도 안 썼다고."



 순간 울컥한 듯한 서준에 혀를 끌끌 차는 보스. 그때 집을 뒤지던 조직원이 흰 봉투를 찾아냈고 곧바로 보스에게 건넸다. 30만원 가량이 담겨있는 봉투였다. 서준은 뺏으려 소리를 지르고 들이댔지만 건장한 성인 남성을 막아내긴 역부족이었다. 



"다들 너처럼 그렇게 말하지. 그럼 나는 이렇게 얘기 해. 그건 당신들 사정입니다."



 늘 꿋꿋하던 서준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 상황이 진절머리나 게 싫었다. 보스는 꽤나 장난스런 표정을 한 채 서준을 물끄러미 보다 제 뒤에 있던 선물용 음료 박스를 조직원에게 건넸다. 공손하게 받아낸 조직원은 이내 서준의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고개를 든 서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를 뒤따라 갔다. 방문을 열자 풀린 눈으로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조직원도 이 상황이 조금 난처한 듯, 혹은 안쓰럽다고 생각을 하는 듯 했고 서준은 다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게 끝일 거라는 직감이 들기 시작하자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어머니의 입모양을 보아하니 무어라 말을 전하고 싶은 듯 했다. 소리를 낼 힘이 도저히 없는 것인지 입모양으로 '사랑해. 미안해. 아들.' 이 말들을 반복하다가 눈을 감았다. 서준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몸을 흔들었다. 



"일어나, 엄마... 제발... 제발 일어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상했지만 제게 닥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서준이었다. 평생 헌신만 하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어머니의 인생이었다. 애달프고 고단하며 단단했던 사람이었다. 서준은 소리 지르며 울어대기 시작했고 조직원은 마당으로 나가 보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데 힘들겠다. 에휴. 세상이 이래요. 뭐 하나 공평하지가 않아."



 보스는 받아들었던 흰봉투를 다시 조직원에게 건네곤 일어서 나갈 채비를 했다. 조직원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바닥에 툭, 던졌다. 



"밥이라도 사 먹던지. 간다, 꼬맹아. 또 보자."



 말을 끝낸 조직원은 이내 대문 쪽으로 향하고 있는 보스에게 뒤따라 붙었다. 대문을 나가려던 순간, 달려온 서준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쓰러진 조직원. 서준의 눈은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곤 울분을 토해내 듯 흰봉투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제 이깟 돈 필요 없으니까 갖고 꺼져.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게 다야. 나머지는 그 씨발새끼한테 알아서 받아내. 다시 찾아오면 죽여버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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